글로벌 경제 - 폭발 직전! 위험한 통화전쟁 

안근모 글로벌 모니터 편집장

지난 두 달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전쟁 같은 홍역을 치렀다. 직진과 유턴을 반복한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세계 각국의 ‘돈 값’이 춤을 췄다. 미국발 불똥이 신흥시장보다는 일본에 더 큰 충격을 줬다. 그 와중에 유로존도 딱한 처지에 몰렸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5월 22일 미국의 금융정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6월 6일,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달러화 가치가 단 몇 시간 새에 주요 통화들에 대해 평균 2% 가까이 추락했다. 특히 엔화에 대해서는 3% 이상 폭락 장세를 보였다. 며칠 전만 해도 103엔을 넘어섰던 달러-엔 환율은 순식간에 95엔대로 곤두박질쳤다.

2.13%로까지 올랐던 미국의 시장금리(10년 만기 국채 이자율)도 이 과정에서 1.99%로 추락했다. 달러화 환율과 금리는 미국의 ‘돈 값’을 안팎으로 표시하는 지표다. 그 둘이 기록적인 변동성을 보이며 요동치는 현상이 금융시장에서 펼쳐졌다. 한 외환 트레이더는 이 전쟁 같은 상황을 두고 “선혈이 낭자했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뉴욕 금융시장의 ‘전황(戰況)’은 정반대로 돌변했다. 달러화 가치가 순식간에 1% 가까이 뛰어올랐고, 미국 시장금리는 2.18%로 폭등했다. 미국의 올해 5월 고용지표 발표를 전후로 해서 일어난 일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을 지배해 온 미국의 화폐 증발(增發) 정책이 방향을 틀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탓이다. 미국 연준은 이에 ‘고용지표에 따라서 결정하겠다’고 조건을 달았고, 그래서 금융시장은 가장 최신의 고용상황이 공개되는 지난 6월 7일을 ‘D데이’로 삼았던 것이다.

‘호텔 캘리포니아’에 갇힌 미 연방준비제도

지난해 12월, 미국 댈러스 지역을 관할하는 연방준비은행의 리처드 피셔 총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이 ‘호텔 캘리포니아’와 같은 통화정책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이글스의 히트곡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 중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장치에 갇혀 있어요. 당신들이 여기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어요”라는 내용을 빗대서 한 말이다).

화폐 증발 정책에 들어가기는 쉬웠지만,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심지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출한 것이다. 미국 연준이 통화방출의 속도를 월간 400억 달러에서 85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린 지 이틀 뒤 나온 말이다. 그로부터 6개월쯤 뒤인 6월 6~7일 이틀간 벌어진 대소동은 미국 연준이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체크아웃(check-out)하려는 궁리를 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격변이었던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호텔 캘리포니아에 체크인한 것은 지난 2008년 말이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모기지 채권 부실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연준은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이 ‘폭탄 세일’을 하지 않고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끔 대대적으로 채권을 사들였다. 시장에 다시 돈이 돌기 시작하고, 자산가격도 폭락사태를 면하기 시작했다. 바로 제1차 양적완화(QE1)였다. 이때 풀린 돈은 총 1조7000억 달러에 달했다.

그 와중이던 2008년 11월.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20개 나라의 정상이 미국 워싱턴에 모였다. 사상 처음으로 열린 G20 정상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각국 정상은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을 위해 ‘동시에’ 대대적인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른바 ‘정책 공조’가 합의된 것이다. 그때부터 1년 동안은 새로운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는다는 데에도 약속했다.

지난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각국이 ‘동시에’ 돈을 풀면 환율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다음 전쟁, 즉 보호무역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여기까진 좋았다. 금융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실물경제도 살아날 조짐을 보였다. 중국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공조에 나서면서 전 세계 경제는 더 빠른 속도로 호전됐다.

지난 2010년 4월. 주요 2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워싱턴에 다시 모였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국제공조에 힘입어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인 시기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심지어 ‘과열’ 우려까지 고개를 들었다. ‘출구전략’이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제는 부양책을 좀 거둬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경제회복 상태가 서로 달랐고, 국가별 정책의지도 상이했다. 결국 워싱턴에 모인 재무장관들은 ‘각국 사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출구전략에 나서자는 데 합의했다. G20의 키워드였던 ‘공조’가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석 달 뒤인 2010년 7월, 한국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금융위기 발발 후 처음으로 부양기조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정책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우리와 사정이 다른 나라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경기 회복세가 아직도 한참 미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었다.

정책 공조에서 전쟁으로 상황 변화

공조를 해체하고 ‘각국 사정에 맞게’ 출구전략에 나서기로 결정할 무렵 미국의 물가는 가파른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디플레이션이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연방준비제도 내부에까지 번졌다. 돈을 다시 대규모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준 안팎에서 돌출되기 시작해 빈도가 높아졌다. 2010년 8월 말,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제2차 양적완화(QE2)를 시사했다. 이는 이미 시장에 형성돼 있던 기대감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해 11월, 연준은 결국 총 6000억 달러의 통화를 방출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처럼 돈줄을 죄기 시작한 곳들이 있었던 반면에, 미국처럼 다른 한쪽에서는 유동성을 더 풀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다시 풀리기 시작한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다. 돈줄이 조여지기 시작한 여타 통화의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급등했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낫고, 그래서 금리가 더 높은 곳으로 유동성이 밀물처럼 몰려든 결과다.


브라질의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이 ‘통화전쟁(currency war)’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입에 올린 게 이때였다.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도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표1> 참조)

유럽 17개국의 공동화폐 ‘유로화’를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독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경제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엄청난 인플레이션 피해를 겪었던 독일은 과거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통화정책을 펴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래서 ECB의 통화정책도 보수적이었다. 미국이 두 번째로 대대적인 화폐 증발에 나서는 동안에도 그들은 두 차례나 금리를 인상했다.

그런 ECB가 결국에는 손을 들었다. 지난 2011년 말부터 두 번에 걸쳐 총 1조 유로를 시장에 방출하는 유럽형 양적완화(LTRO)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올린 지 반년도 되지 않아 통화정책 방향을 극적으로 유턴한 셈이다. 그리스 사태가 심각해지고, 이것이 이탈리아 등 남유럽 주요국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응급처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으로는 환율전쟁의 확산을 의미했다. ECB는 기준금리도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2012년 들어서는 중앙은행에 묶어 놨던 은행들의 초과유동성을 방출하기 시작했고, 남유럽 국채를 무제한으로 사들일 수 있다고까지 천명했다. 미국도 화력을 높였다. 지난해 9월, 연준은 매달 400억 달러씩 모기지 채권을 매입하는 제3차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이번에는 기한도 정해놓지 않은 ‘무제한’ 통화방출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일본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 후보가 역시 ‘무제한 통화발행’을 공약하고 나섰다. 그 공약으로 정권을 잡은 아베 총리는 일본은행 총재를 갈아 치운 뒤 지난 4월 실행에 나섰다. 앞으로 2년 동안 본원통화량을 두 배로 불리는 화폐 증발 정책이 도입됐다.

그 사이 일본 엔화 가치는 기록적으로 추락했고, 엔화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화폐 가치는 수직상승했다. 주변국의 반발이 솟구쳤다. 브라질의 만테가 재무장관이 다시 ‘통화전쟁’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 와중에 미국은 양적완화 규모를 월간 85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액했다.

전 세계 주요국의 우려가 고조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부풀어올랐다. 주요국들이 이렇게 천문학적인 부양에 나서면 경기가 더 빠르게 살아날 것이고, 그러면 수출 길도 더 많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사이 여러 나라의 주식값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탔다.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 주요국들이 뿜어낸 유동성의 작품이었다.

주요국 화폐증발에 대한 우려감이 기대감으로 승화하는 사이, 미국 안에서는 정반대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내다가는 결국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연준 내부에서 확산됐다. 금융시장이 당장 큰 문제였다. 돈이 무제한 풀릴 것이란 기대감으로 너무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투자자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빚을 내가면서까지 위험한 채권을 사들였다. 이자율이 높다는 단 하나의 이유뿐이었다.


Posted by 헬로 Sophie 헬로 G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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